성낙중 전

2016. 7. 8 – 7.31

쇠의 물성, 우주의 리듬
—성낙중 초대전 「鐵·새·宇·宙」에 부쳐

조각가 성낙중이 우연히 만난 새가 어느덧 그의 조형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다.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 작가의 손에서 새는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우주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솟대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새의 신화적 의미나 시베리아의 무당이 대장장이였을 가능성을 비정하는 민속학적 맥락을 차치하고라도, 새는 그 자체로 비상을 향한 인간의 꿈을 집약한 도상이면서 지표이기도 했다. 날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 인간이 우주의 리듬을 타기 위해서는 새라는 메타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각가 성낙중이 새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낡고 녹슨 철판을 구해 그것을 사각으로 잘라낸다. 그것을 말아 원통을 만든다. 그리고 그 원통 세 개를 이어 붙여 새의 몸통을 만든다. 여기에 조각가의 손길이 스친 머리와 꼬리, 다리가 덧붙여지면 한 마리의 새가 완성된다. 그리고 그 새는 조각가가 만든 우주의 한 지점에서 날개를 접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형상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많은 의미들이 깃들어 있다. 조각가 성낙중이 만드는 새는 실재하는 새를 모사하는 데 급급한 새가 아니다. 성낙중의 새는 몇 개의 원통이 만들어낸 구조적 패러다임으로부터 변이를 통해 태어난 새이며, 이는 새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일정한 조형의식과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견 성낙중의 새가 모두 비슷해 보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새의 각 부분의 연결점들에서 일어나는 작가의 조형적 선택이 만들어낸 무한히 자유로운 변주이며, 그 연결은 그것이 놓이는 우주라는 맥락에 가장 적절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기운생동하는 새의 모습을 현현한다. 그 새는 그저 하나의 조형물에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이 놓이는 광대한 우주를 상상하게 하는 촉발 지점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럴진대 성낙중의 새는 언젠가 날 것을 꿈꾸는 새다. 우주는 생동하는 기운으로 가득하고, 그것에 언젠가 몸을 맡겨야 할 새는 그 우주의 모습을 도상적으로 나타낸다. 새는 우주의 한 부분이면서 그것의 모습을 현현하고 있기도 하다. 성낙중의 새가 꿈틀거리듯 생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런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이다. 조각가 성낙중은 이미 그간 보여준 대작 「기억」「불카누스」에서 철근의 구부러짐을 통해 바람의 움직임을 표현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바람」「어린 왕자」 등도 그러한 예라 할 것이다. 쇠를 통해 바람을 표현한 것은 살아 움직이는 우주의 기운을 암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새 역시 성낙중 나름의 조형미학을 거쳐 그러한 우주의 기운에 동참하게 된다. 쇠라는 물성을 그렇게 깃털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변형시켜 보여주는 마술은 성낙중만의 독보적 경지라 할 것이다.
대장장이 작가 성낙중이 다루는 쇠는 이미 시간의 흔적을 남긴 것들이다. 거기에 작가의 손길이 더하여 만들어진 조형물들 또한 앞으로 시간의 흔적을 각인해갈 것이다. 우주를 이루는 시공간의 리듬 안에 이러한 조형물들이 좌정될 때, 우리는 미래에 무한히 실현될, 물질적으로 재생 가능하고 정신적으로 해석 가능한 쇠의 역동적 기운과 조형적 가능성을 감지해낼 수 있을 것이다.

송효섭(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