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낭만이 떠 있다.

거기, 낭만이 떠 있다

그림은 한 개인의 숨에서부터 비롯되어 나온다. 그 숨을 불어넣은 장면들은 멈춰있거나 특별한 무언가를 확정지어 나타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여러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면들을 ‘떠 있다’고 표현했다. 이곳에 주어진 낭만이라는 감정은 몽상적인 환상으로 이끌어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작품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간과하기 쉬운, 경험의 감춰진 매력을 일깨운다. 작품을 찬찬히 보다보면 감상하는 능력에 불이 붙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 회화에서는 작가들의 주관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형식과 분위기가 구사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서는 시간, 현실의 감각은 환상과 환영의 물빛이 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사랑을 느끼게 하고, 기억의 편린이 조합된 콜라주 된 풍경, 섬.. 등을 마주할 수 있다. 예술 덕분에 그런 광경은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고 움직인다. 예술가는 이 세계의 가장 부드럽고 감격적이고 매력적인 양상에 관심을 돌릴 줄 안다.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그저 주위에 있던 소중한 것들을 성급하게 지나쳤을 뿐이다. 이 작가들이 발견했던 것을 우리 주위에서 발견하는 방법과 모습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고전적인 예술은 한정적인 것을 묘사하고, 낭만적인 예술은 무한을 암시한다”고 한 하이네(Heine,H.)를 위시하여 (명상록 Speculations, 1924)의 저자 흄(Hulme,T.E.)은 인간을 우물에 비유하여 낭만주의를 ‘가능성이 가득 찬 저수지’로 보고 있다.

이런 가능성이 가득 찬 작가들이 작품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세계 자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감각적 현실을 초월하여 관념의 세계에 실체가 존재하게끔 한다.

어떤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깃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작가들은 그 과정에서 이상이나 동경과 신비감 등을 길들여지지 않은 순박함으로 대상을 보고자 하는 힘에 주목한다, 늘 불안하고 녹록치 않은 삶을 회피하지 않고 이를 예술행위로 극복하려는 의지로 모든 신경과 정신을 손가락 끝으로 모는 그 행위의 매력에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물감으로 순간의 감정들을 강렬하게 화폭에 담아버린다. 그 낭만적 힘은 거기, 이곳에서만큼은 더 없이 귀하다.

회화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려지는 것, 곧 주제보다는 그리는 방법, 즉 주관적 표현이다. 작품들은 고정적인 유한한 창조물이 아니라 주관적, 개성적, 공상적, 신비적, 동경적, 과거적, 정열적, 원초적… 등과도 같은 인간의 감정적 속성이 엿보인다. 그들이 보여주는 절실함과 예술 혼은 마음 한구석 계속 그리워지는 진정한 예술가와 인간의 모습이다.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한결 풍요로워지며 삶과 인간에 대한 믿음도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타성에 가려지고 잊혀져버린 삶 속에 감동적이고 진실 된 대답을 보여주고 내미는 것에 의미를 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생각보다 빡빡한 현실 속의 피곤함으로 포장된 몸을 끄집어내어 파토스적 세계에 담궈 어느새 단꿈에 젖어들기를 바래본다. 마음이 움직이는가? 객관보다는 주관을, 지성보다는 감정을 엿보자. 이번 전시로 닫혀있던 감각이 순간적으로 열리길 바란다. 지극히 감상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환상을 자유분방하게 발휘하고 표출시켜나가는 작가들이 부럽다. ■ 문예슬 (아트팩토리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