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약력 & 서문>
한생곤 Saenggon Han(1967)
화가이자 시인인 한생곤은 1966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 ‘깨달음의 회화적 수렴에 관한 연구’에서 자신을 ‘지구 위의 여행자’로 정의하고, 삶과 예술에 관한 내면의 고백을 매우 솔직하고 치열하게 전개하며 이후 자신의 행보에 대
한 암시를 담아내었는데, 그해 서울미대에서 가장 잘 쓰인 논문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후 꾸준한 전시
활동을 보여주며 22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최근의 그는 변하는듯 변하지 않은 자신의 고향 풍경을 그린 ‘마을’ 연작과 더불어 2023년부터는 전통 산수화를 재해석한 ‘산수’ 연
작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작품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제비울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 대산문화재단, 쌈지농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노무현사료관 외 출판물 여행단상
집 ‘노란버스’ (하늘숲, 2004)
<서문>
<마을> 연작은 2004년 첫 그림 이후 지금까지 총 6점을 그렸다. 이 그림은 내가 태어난 사천의 고향 마을을 그린 것이다. 화실 건너편 제실 마당에 캔버스를 펼쳐놓고 스케치를 한 다음 세부는 화실로 옮겨 완성시켰다. 두 번째 제작한 <마을> 그림은 제비울 미술관에 기증했으나 미술관 사정으로 소재를 알 수 없었는데 허진 선배님을 통해 안산 모 식당에 있다는 걸 최근 알게 되었다. 세 번째는 서울시립미술관, 네 번째는 소장했던 곳에 화재가 나서 소실된 것을 2023년 다시 복원시켰으나 그림의 맛이 달라진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처럼 지난 20년 동안 총 6점을 그린 <마을>연작은 내 그림을 찾아 좌충우돌 헤매던 젊은 시절, 고향처럼 중심을 잡아준 소중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마을>4, 5, 6은 내가 가지고 있다.
최근에 발표하고 있는 <산수>연작은 기존의 <마을>그림의 심화 확장을 꾀하는 노력이다. 나는 평생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려 애썼다. 내가 태어났고 낳아 주신 어머니가 바로 옆집에 계시고 조상님들의 선산 자락에 지은 고향 화실에서 20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순한 소 한 마리와 맹한 개 한 마리가 졸고 있는 옛집 마당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집을 둘러싼 멀고 가까운 산들도 여전하다. 돌아가는 시침과 분침의 가운데 꽂힌 핀처럼 나는 태어난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고 생긴대로, 생겨나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의 이런 살림살이는 ‘메이드 인 코리아 화가’로 작업하자는 다짐의 한 실천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단점이 또 없는게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미술환경에서 지나치게 폐쇄적인 우물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이다.
우물 안 화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그림의 정체성 찾기, 한국미의 DNA에 대한 탐구, 메이드 인 코리아 화가 한 아무개 되기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겉을 벗기면 속이 나오고, 속을 벗기면 영혼이 나온다. (장 콕토)’ 영혼을 바치지 않고 심화에 이르는 뾰족한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불변의 진실이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심화의 노력을 계속 할 것이다. 문제는 확장이다. 산수, 제망찰해는 이 확장에 대한 새로운 탐험이다. 산수는 마을을 확장한 것이고 제망찰해는 산수를 다시 확장해 본 것이다. 그러나 확장 또한 심화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확장을 동반한다. 마음 다함을 요구받는다. 진정성을 요구받으며 품질과 밀도를 요구받는다.
깊게 파기 위해서는 우선 넓게 파라고 했다. 어디를 깊게 팔 것인지는 넓게 파다 보면 보인다는 것이다. 자기 그림을 찾느라 두서없이 여기저기 삽질을 하며 헤매는 이 어디 나뿐이랴. 깊은 내공이 깃든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 허둥거리는 이 어디 나 뿐이랴. 하지만 결국 우리들은 고통스런 헤맴을 통해 자신이 누울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2023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산수, 제망찰해는 조형 세계에 있어서 나의 방황과 방랑이 이제 종합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증거하는 작업들이다. 하늘에는 새를 잡는 그물, 땅에 흐르는 물에는 고기잡는 그물, 천라지망. 우주의 온갖 물질과 현상을 망라하는 삼라만상. 이들이 인과 연의 그물로 서로 무한한 경우의 수로 연결된 제망찰해. 이 어딘가 <산>이 있고 <물>이 흐른다. 그리고 나와 우리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마을에 있는 집집마다 굴뚝에는 <새로운 연기>가 오늘도 열심히 피어오르고 있다. – 한생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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