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리해 – 사진 속의 사진, 사진 속의 회화

2014. 8. 1 – 8. 21

전리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인 회화와 극히 현대적이고 기계적인 사진의 공존이다. 두툼하게 배접한 한지에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부드러운 추상화와 카메라로 찍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장소들의 사진을 힘께 설치함으로써 이질적인 두 요소가 충돌하며 기이하고 특이한 세계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우리 시대 미술의 가장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어떤 예술 장르의 순수성을 고수하기보다는 다른 장르를 과감하게 도입하는 일인데, 전리해 역시 과거에는 격렬히 대립하였던 회화와 사진을 하나의 작품 속에 공존하게 한다.

특히 전리해는 사진 그 자체의 작업에 매달리기 보다는 사진을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보고자 한다. 사진은 전통적으로 외부 세계의 재현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충분히 완성적이고 아름답고 조화롭게 제작된다. 즉 사진 이미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어야 하며, 과거 회화를 대체하고자 하였기에 상상적이거나 이상적인 현실과 자연을 재현하면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한다. 이러한 사진들은 줄곧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스펙터클한 자연 풍광, 또는 다큐멘터리로서 흥미를 불러일으킬 대상, 모험적 장면, 신기한 장면 등을 재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진은 과학을 위해 봉사하고, 산업과 상업, 관광 등에 종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진은 스스로 예술을 대체하고자 하였기에 예술가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사진을 예술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예술가가 사진을 자신의 표현 도구로 사용하고자 할 때, 사실 그는 오히려 사진에게 자신의 예술이 함몰될 가능성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예술적 사진은 이렇게 사진의 재현적 기능을 순수하게 인정하고 난 후, 그곳으로부터 예술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촬영의 순간 속에서 영원성을 도출해 내는 것이 사진을 예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 사회의 사진이 완전하고 치밀하게 준비 되어 그 자체로 아름답고 완성된 작품이었다면, 예술가의 사진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고, 미완성이거나 거칠기조차 하며, 여전히 만들어지는 제작 과정을 보여 주기도 한다. 전리해의 사진 역시 세부의 섬세함이나, 완결된 조화, 사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며, 객관적 묘사가 아닌, 주관적 조작의 흔적과 과정을 드러낸다. 전리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대상의 재현을 뛰어넘어 자신과 관계된 삶의 흔적이고 그 기록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진은 예술 본래의 목적, 즉 눈에 보이는 것의 모방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거나 촉발시키고자 한다. 작가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내 자신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시간의 풍화 작용을 이겨낸 하찮은 장소나 사물 속에 도피해 있는 진정한 자아이다. 작가에게 이러한 장소는 분명 위협적이거나, 장대한 장소, 권위와 허위로 무장한 도시의 빌딩이나 아파트 숲이 아니라, 그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한 채 버려지듯 퇴색해버린 재래시장의 골목과 그저 그런 작은 소품들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일상적 대상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숨겨져 있고, 어느 순간 그런 자아를 우연히 조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순간 찰나적인 사진은 진정하고 영원하며 진실 된 자아를 촉발시킨다.

사실 이렇게 하찮은 대상 속에서 영원성이나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하는 흐름이 현대 예술에 도도한 줄기를 형성한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마르셀 프루스트인데, 주인공 마르셀이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입술에 대는 순간 과거 어린 시절 그것과 유사한 상황을 생생히 추억하며 전율하는 일화는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만약 뒤꼍 작은 광에서 뿌옇게 먼지 쌓인 유년시절의 책가방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혹시 우리도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으며 희열과 전율에 몸을 떨지 않을까? 물론 현대 예술이 이러한 행운을 잡는다는 것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그나마도 약간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용으로부터 벗어난 감성적 대상, 하찮은 대상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전리해 작가의 추구는 당연하고 의미 있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장소, 과거의 시간, 현재에 머무르면서 현재적이지 않은 것들, 회화와 사진 등 서로 이질적인 것들을 병치시키며 그것으로부터 어떤 공통의 것,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본질을 찾고자하는 전리해의 작업들이 항상 기대된다. ■ 이수균(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