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빈, 한생곤 전

2014. 3. 12 – 4. 6

배석빈 평론 / 김이형(작가)

신선하다. 깊은 멋을 지닌 그의 그림들에 담박한 풍미가 피어난다.
2014년 기나긴 겨울 내내 화가가 잡고 있던 그림들은 마음을 비우게 한다.
눈에 띄는 담담하고 은은한 색조의 변화는 모든 것의 본연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치 얼기와 녹기를 수차례 반복하여 펼쳐진 그의 사유들에 또다시 정신이 차려진다. 시선은 순간을 넘어서는 어떤 과정을 관조하고 있었다. 단단하고 차갑고 매서운 상태 전부를 담아낸 붓질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다. 화가의 한 수다. 붓질과 형상들, 흔적들은 온도를 낮춘 듯 고요하다. 그 고요함에 화가의 시선의 냉철함이 더욱 드러난다.
배석빈의 그림들은 삶의 수많은 상태들을 지시한다. 늘 대담한 존재자로써 경험케 하는 그의 사유들에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자유롭고 용감하며 그리고 넓고 높고 깊은 인간 정신이 여기 있다.
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생생함이 배석빈의 세계가 주는 인상이다. 붓질로 다루는 표현의 내용과 깊이는 표면적인 모습을 넘어 삶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준다. 황량한 듯 청명한 화가의 기운이 묻어있는 그림들은 분명 삶에 밀착되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보편성을 아우르는 개인의 특수성이야말로 그림을 통해 우리가 보고자 하는 세계인 것이다. 우리가 여기는 귀함은 단단하고 빛나는 보석처럼 정신의 어떤 한계를 향해 있을 때 드러난다. 세계에 흔들리고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를 만들고 움직이고 흔들고 있음을 아는 순간 그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림 앞에 함께 서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가 세계의 크기와 모양을 만든다. ‘무엇이 날라 갔으며, 무엇이 쓸려갔으며, 무엇이 남겨졌고, 무엇을 남겨지듯 붙잡았고 끄집어내었으며 또 그것을 어떻게 느꼈는지’ 상실에 대해, 혼란에 대해, 유한함에 대해 삶의 수많은 상태들에 대해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그림은 하고 있다.

한생곤 작품의 근간이 된 타고르의 시 (양주동 번역)

바닷가에서..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 그림같이 고요한데
물결은 쉴새없이 남실거립니다
아득한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껍데기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한 바다로 보내는 아이
모두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헤엄칠 줄도 고기잡이 할 줄도
진주를 캐는 이는 진주 캐러 물에 들고
상인들은 돛 벌려 가고 오는데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집니다

그들은 남모르는 보물도 바라잖고
그물던져 고기잡이 할 줄도 모릅니다
바다는 깔깔거리고 소스라쳐 바서지고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습니다

사람과 배 송두리째 삼키는 파도도
아가 달래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들려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놉니다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길 없는 하늘에 바람이 일고
흔적없는 물 위에 배는 엎어져
죽음이 배 위에 있고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