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정 – 집, 그리고 공간

2014. 9. 18 – 9. 30

집’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공간이다. 또한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다. ‘집’은 어떤 다른 세계를 숨기고 있는 껍데기이기도 하다. ‘집’에 달린 문과 창문은 그 새로운 세계로 가는 통로이자 연결매체다.

‘집’은 각각 홀로이지만 여러 개의 집들이 모여 집단으로도 존재한다. 집들이 모인 공간은 지붕, 벽, 창문, 기둥 등의 여러 인위적인 선과 도형, 집 주위의 환경들과 어우러져 전혀 뜻밖의 추상적인 형상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집들이 지어질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간이다. 집들이 합쳐지고, 이어지면서 이 공간은 끊임없이 확산된다. 여기에 공간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까지 보태지면서 더욱 더 새로운 추상적인 형상이 만들어진다. 나는 집들이 만들어 내는 예상치 못했던 공간, 가시적이고 일차원적인 형상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환상의 공간에 주목한다.

환상의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일루젼(Illusion/환각, 착시)으로, 허무한 상상의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들이 서있는 공간이 우리 현실 속에 있는 것처럼, 그 집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공간은 현실에 맞닿아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의 눈은 사물의 외적인 형상만을 보지만, 그 형상 속에는 이면이라는 또 다른 형상이 존재한다. 나는 집이라는 공간적인 매체를 통해 그 공간의 이면이 갖는 의미와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공간의 외적인 형상과 이면이 갖는 의미를 연결시킨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고 싶었다. 선(Line)은 연결(Connection)이다. 선(Line)은 그 자체만으로는 독립적이지 않지만, 모이면 면이 되고 결국 공간을 창조해 낸다. 내 그림 속에서 각각의 집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선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자연과 부대끼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건축물인 집. 집들이 모여 생성되는 추상적인 형태, 환상적인 공간을 통해 집들 너머의 새로운 공간, 새로운 의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갈망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