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중 개인전 – Impedance

2017. 12. 16 – 2018. 1. 7

Impedance

한지 위에 연필로 드로잉 한 김범중의 작품은 뭔가 한 꺼풀이 벗겨진 피하 층처럼 섬세하다. 그리고 취약하다. 그것들은 매끄럽게 그려진 이미지라기보다는 표면을 뾰족한 것으로 긁어 생긴 상흔들이다. 이러한 민감한 표면 때문에 그리드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질서정연한 형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이 부족하다. 그의 작품에서 배경과 대상은 질적 차이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배경의 일부가 변형되어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마치 꺼짐과 켜짐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최초의 명료한 분석과 분류의 틀은 점차 시간의 두께를 거쳐 물질화되고 육화된다. 최초의 균등한 분할은 명도에 따라 다른 크기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은 추상적 기하학이 아니라, 물질과 행위, 그리고 육안이 만들어내는 유기적 기하학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움직임이 큰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은 과정 중의 한 장면만을 고착시켜 인식하기 쉬운 이성의 습관을 역류한다. 한지 위에 연필로 그려진 드로잉은 그림이라는 정지된 매체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Eigen Frequency’, 즉 각 사물에 내재한 고유 진동수는 시간성에 기초한다. 그것은 한 줄 한줄 그어나가는 시간이고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시간이다. 한 켜 한 켜 쌓이거나 벗겨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유한한 존재가 죽음에 한발자국씩 다가가는 운명적 시간이다. 작은 것들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차이를 둔 반복이다. 각기 방향이 다르게 정렬해 있는 선들은 그 밀도와 강도에 따라서 명도가 달라진다. 강한 블랙에서 약한 블랙의 계열이 있는 그의 작품은 가운데서부터 가장자리로 번져 나간다. 파동은 상자 안의 상자에서도 반복된다. 그의 작품은 규칙적 간격 때문에 직물이나 자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은 실을 꿰어 수놓은 듯한 작품은 바탕 위가 아니라 바탕 자체를 관통하는 듯한 힘이 느껴진다. 이 때 그의 도구인 연필은 침이나 바늘이 된다. 직물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짜여 진 텍스트를 물들이는 것은 심층의 어둠이다. 이때 블랙은 밀도의 차이를 통해 스며들거나 스며나오는 무엇이 된다. 또한 그것들은 소리로도 향기로도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동형구조를 이루는 단위들은 흐름의 정류(整流)–사전적인 의미로는 ‘유체의 흐름을 고르게 하여 혼란이 없는 상태로 흐르게 함’을 말함?상태와 유사하다. 심연에서 솟아나 빛과 잠시 만나 고유의 순간을 언뜻 보여주고, 그것들이 비롯된 곳으로 되돌아간다. 칸칸마다 지속과 순간의 교차가 있다.

-이선영(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