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중, 삶이 녹아든 조형의 세계

과거는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다. 성낙중 작가는 본인의 삶 속에 녹아있는 그 무언가를, 자연의 ‘재료’에 의탁해 모호한 기억의 실체를 가시화 한다. 그의 조각은 자연의 형상을 닮아있다. 자연에서 채취한 돌과 나무 등 자연의 재료를 깎고 다듬으며 제작한 작품은 생명의 유기적 형태와 기하학적인 요소를 담아 자연 그 자체로부터 체득된 작가의 경험과 기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아트팩토리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그의 대형 조각 작품과 인사하며 약 20여점의 작품을 전시장 안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의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손 맛이 작품에 이야기를 불어넣어 생명의 근원에 대한 새로운 조형언어를 마주하고 잠재된 미감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그간 작가는 세속적 가치와 잣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알맞은 속도로, 스스로가 감당할 만한 호흡을 유지해가며 꾸준히 심고 담아낸 생명의 이치를 몸소 증명해왔다. 그는 고철, 돌, 나무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비조각적이고 가변적인 재료가 지닌 물성에 의탁해 자신의 감정과 정신성을 드러낸다. 그가 이 같은 일상과 밀착된, 손만 뻗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작업 방식, 그리고 이를 수행해 나가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렇게 관객들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오롯이 물성 자체가 지닌 재료미, 그리고 재료의 질감과 속성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한 것은 작가가 의도한 바이다.

성낙중 작가의 조각에서는 ‘무엇을 만들어 표현하였는가?’보다 ‘무엇으로 어떻게 표현하였는가?’의 맥락과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전통조각과 달리 ‘재료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조각을 이루는 재료의 물성과 의미에 대한 탐구이다. 재료 고유의 질감과 미감에 작가의 감정과 사상을 불어넣어, 재료의 물성으로 작가의 내면과 정신성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하는 조각의 자질이자 본연의 역할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재료가 지닌 물성과 질감, 그리고 이를 빌어 말하고자 하는 의미 사이의 관계성에서 출발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미의 형태를 직조한다.

소위 동시대 미술에서는 ‘관객과의 소통’,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 등을 역설하는 반면, 성낙중 작가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특히 작품 앞에 서면 우선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이 정한 속도로 본인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걸어온 결과이다. 즉, 이러한 경향은 그의 작업이 사적 경험과 내면의 감정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예술의 순수성을 지향하며 소통을 거부한 모더니스트들의 태도와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감정과 체험, 일상적 재료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작가의 사적 심상들이 전시장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보여지고 자연스레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 한마디로, 작가는 소통을 중점적인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작업이 뿜어내는 작가의 진한 땀 냄새와 어우러진 ‘아우라’는 관객의 공감과 몰입을 충분히 이끌어낸다.

이번 전시로 하여금 우리 삶 속에 녹아든 그의 작품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유행에 편승된 것에서 벗어나, 예술이, 그리고 조각이 여전히 대중들과 진행형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당위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문예슬 (올댓큐레이팅 대표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