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화가의 산수몽 싣고…한생곤 ‘나뭇잎 배’

서양화가 한생곤(51). 한때는 ‘길 위의 화가’라 불렸다. 한량 분위기 물씬 나는 별칭 아닌가. 사실 그랬다. 노란 중고버스를 한 대 구해 강원·전라·경상도 등 전국을 여행하며 작업했으니까.

벌써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생활을 몇 년은 이어갔나본데 꿈은 이룬 셈이다. 김삿갓처럼 봇짐 하나 메고 산천을 떠돌며 그림을 그리는 게 소원이었다니.

‘나뭇잎 배’(2017)는 이제는 작업실에 정착한 작가가 그래도 못 버린 ‘산수몽’처럼 보인다. “내 붓질 한 번, 그림 한 조각은 필경 자연 혹은 산수란 타고난 바탕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나뭇잎 배 한 척의 팔랑거림”이라고 했다.

물감 대신 안료를 즐겨 쓴다. 덕분에 그림은 매끈한 윤기를 버리고 대신 까칠한 질감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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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생곤의 ‘나뭇잎 배’

한생곤 작가는 10년 넘게 몸 담았던 화실 전세금을 빼서 중고 노란버스를 구입, 전국 방방곳곳을 여행하며 작품활동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달팽이처럼 화실을 등에 업고 돌아다니는 ‘이동화실’을 꿈꾸다 2002년 중고버스를 구입해 ‘노란버스 화실’을 마련했다. 노란버스와 함께 한 900일 간의 그림 여행 이야기는 ‘노란버스’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된 바 있다.

그는 “화가에게 그림 한 장, 작품 한 점은 그가 인생을 통틀어 그 전모를 맞춰 보고자 하는 꿈의 조각들”이라며 “작업실에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들을 보며 이게 도대체 결국 어떻게 맞춰지는 걸까 매일 사유의 노숙을 할 때마다 문득 그 옛날 여산의 진면목을 보기 힘들다고 혀를 차며 토로했던 늙은 문인의 마음에 이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고 작가노트에서 밝혔다.

달밤이 요동을 친다…이정은 ‘월광곡’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백제가요 ‘정읍사’의 한 구절. 굳이 현대어로 풀자면 ‘달아 높이 돋으시어 멀리 비치게 하시라’ 정도가 될 터다. 요란한 네온사인에 달빛을 잃은 지 오래지만 요즘도 휘영청한 달밤에 자주 불린다.

그런데 달밤을 그리워하는 이가 여기 더 있다. 화가 이정은(47)은 달을 주제로 오묘한 밤 풍경을 잡아낸다. 적막한 전경이려니 단정할 것도 아니다. 달밤의 세레나데인 ‘월광곡’(2017)에는 되레 밤의 고요를 깨는 에너지가 요동친다.

하늘에 달이 하나뿐이란 법이 있나. 여기저기 박은 색색의 원은 차라리 우주의 블랙홀이다. 산수화인 듯 추상화인 듯 경계가 무색한 달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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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봐도 ‘그림이 되는’ 날…서상익 ‘어나더데이-어디로’

이런 날이 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그림이 되는’ 날. 탁 트인 전경이 ‘수채화 같은!’을 외치게 하는 날.

‘어나더데이(Anotherday)-어디로’(2017)는 매끈한 도시풍경이다. 서양화가 서상익(40)의 많지 않은 ‘맑은 그림’이다. 예전엔 두꺼운 붓터치가 독특했다. 오랫동안 매진한 초상화가 그랬고 무거운 실내 분위기를 그려낸 작업이 그랬다.

도시풍경을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란다. 하지만 과정이 힘들었다는데. 건물의 ‘직선’에 집착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스스로 냈다. 그 강박을 벗어나니 편해졌다고.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중요한 건 세상을 보는 방식과 표현법이었다고. 편안한 풍경 한 장면이 이토록 힘든 작업일 줄은 몰랐다.

내달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팩토리서 여는 개인전 ‘어제와 같은, 같지 않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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