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ROOM – Rooms for Monochromatics

2018. 1. 10 – 2018. 1. 30

김범중
한지 위에 연필로 드로잉 한 김범중의 작품은 뭔가 한 꺼풀이 벗겨진 피하 층처럼 섬세하다. 그리고 취약하다. 그것들은 매끄럽게 그려진 이미지라기보다는 표면을 뾰족한 것으로 긁어 생긴 상흔들이다. 이러한 민감한 표면 때문에 그리드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질서정연한 형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이 부족하다. 그의 작품에서 배경과 대상은 질적 차이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배경의 일부가 변형되어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마치 꺼짐과 켜짐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계처럼 말이다. 최초의 명료한 분석과 분류의 틀은 점차 시간의 두께를 거쳐 물질화되고 육화된다. 최초의 균등한 분할은 명도에 따라 다른 크기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은 추상적 기하학이 아니라, 물질과 행위, 그리고 육안이 만들어내는 유기적 기하학이다. / 이선영

이길원
모필을 세워서 찍듯이 내려치는 일은 힘의 완급조절, 속도와 강도, 거리와 시간, 중력의 법칙 등이 관여하고 그 조건에 의해 주변(종이로 덮여진 부분을 제외한 바닥면)으로 튕겨나간 먹물이 다양한 선/얼룩을 남긴다. 작가는 매순간 자신의 감정에 따라 때로는 강하게, 약하게 찍는다. 이때 화면과 화면 외부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행위가 그림이 되는데 그것은 화면의 내부도, 그 바깥도 아닌 둘의 접점에서 이루어진 사건의 결과이다. 그로인해 장지에는 어떤 식으로든 얹혀진, 교차하고 튕겨진 먹의 여러 풍성한 표정들이 흑백의 대비 속에 자글자글하게 얽혀있다. 손이 아닌 다른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우연적인 효과가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 박영택

한상진
펄프성분이 높은 파브리아노지에 펼쳐진 한상진의 먹 드로잉은 세계와의 스침 그 찰나의 촉지성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기록)한 것이다. 시각보다는 오히려 피부를 스치는 현상을 포착함으로, 대상성과 주체의 경험 사이에서 발현하는 종이와 붓의 담백한 스침들이 무한하게 증식하고, 또 한편으로는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로잉들은 그의 회화와 유사한 작업 프로세스와 조형적 태도로부터 기인하나, 회화와는 또 다르게 분방한 그리기의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한상진의 드로잉이 독립적인 속성을 갖는 이유다. / 김진하